SF 영화의 단골 장면을 떠올려봅시다. 주인공이 최첨단 비행체를 타고 복잡한 빌딩 숲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 지상의 교통체증이 남의 이야기인 듯 하늘길로 출퇴근하는 미래적 이미지는 더 이상 막연한 상상이 아닙니다.
이 꿈같은 기술, 도심 항공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 UAM) 상용화를 위해 지금 세계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상용화 카운트다운에 돌입하며 속도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의 UAM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요? 최근 들려오는 사업 지연이라는 우려는 과연 사실일까요? 대한민국의 하늘 위 기회를 심층 분석합니다.
UAM은 단어 그대로 '도심의 하늘을 활용하는 이동수단'입니다. 핵심은 eVTOL(전기 동력 수직 이착륙 항공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비행체입니다.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뜨고 내리지만, 전기 동력을 사용해 소음이 훨씬 적고 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기술입니다.
UAM이 상용화되면 우리 삶은 상상 이상으로 달라집니다.
• 교통 혁명: 서울 강남에서 인천공항까지 1시간 넘게 걸리던 길이 단 20분으로 단축됩니다. 만성적인 도심 교통난이 획기적으로 해소됩니다.
• 물류 혁신: 산간 도서 지역에 긴급 의약품을 신속하게 배송하고, 도심 내 물류 운송 시간을 크게 줄여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합니다.
• 생활의 확장: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도시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여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입니다.
분석가의 인사이트에 따르면, UAM은 단순히 새로운 '교통수단'을 넘어, 도시의 공간 구조와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플랫폼 혁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글로벌 UAM 시장은 이미 기술 시연 단계를 넘어 치열한 '사업화'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 미국
– 선두기업: 조비 에비에이션, 아처 에비에이션
– 주요 동향 및 성과: 미 연방항공청(FAA)의 엄격한 인증 절차를 통과하며 상용 운항 준비에 박차.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과 대규모 구매 계약 체결
– 상용화 목표: 2025년 ~ 2026년
• 중국
– 선두기업: 이항(EHang)
– 주요 동향 및 성과: 2023년, 세계 최초로 UAM 기체(EH216-S)에 대한 '형식 승인' 획득. 관광 비행 등 제한적인 상용 서비스를 이미 시작하며 시장 선점
– 상용화 목표: 즉시 (제한적)
• 유럽
– 선두기업: 볼로콥터(Volocopter), 릴리움(Lilium)
– 주요 동향 및 성과: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시범 운항을 목표로 하는 등, 대형 이벤트를 활용한 실증 및 상용화 추진
– 상용화 목표: 2024년 ~ 2025년
이들의 공통점은 더 이상 연구실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승객을 태우고 돈을 버는 사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한국의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당초 2025년 상용화 목표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통신사와 현대차 컨소시엄 등이 사업 속도를 조절한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이 '지연' 우려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하늘에 길을 내는 것은 도로를 까는 것보다 복잡합니다. 항공 안전법, 관제 시스템, 소음 기준 등 UAM 운항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UAM이 뜨고 내릴 전용 공간인 버티포트는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 소음과 안전에 대한 우려로 인해 서울 시내 핵심 입지에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UAM은 기체, 관제, 플랫폼, 서비스가 하나의 시스템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현대차의 기체 제작능력, SKT의 통신/관제 기술 등 개별 기업의 역량은 세계적이지만, 이를 완벽하게 통합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머리 위로 비행체가 날아다녀도 정말 안전할까?"라는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UAM 상용화의 가장 큰 허들 중 하나입니다. 소음, 사생활 침해, 추락 위험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UAM은 이대로 주저앉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강력한 카드가 있습니다.
•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강국:
– 기체: 현대자동차그룹의 UAM 독립 법인 '슈퍼널(Supernal)'은 세계가 주목하는 기체 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관제/통신: 안정적인 관제에 필수적인 세계 최고 수준의 5G 통신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의 핵심 경쟁력입니다.
– 항법/방산: 한화시스템 등이 보유한 정밀 항법 및 레이더 기술은 UAM의 안전 운항을 뒷받침합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 활용해 특정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비행을 허용하고,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제적으로 법규를 마련해야 합니다.
대형 빌딩 옥상, 도심 공항 터미널, 환승센터 등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는 '한국형 버티포트' 전략으로 초기 투자 비용을 줄이고 빠르게 거점을 확보해야 합니다.
정부 주도의 'K-UAM 그랜드 챌린지' 실증 사업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안전 기준을 제시하여 기술에 대한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UAM이 글로벌 속도 경쟁에서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계적인 제조 기술, IT 인프라,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저력이 있습니다.
UAM 경쟁은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안전과 기술 완성도를 겨루는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지금의 '지연'을 단순한 위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서두르다 놓칠 수 있는 안전과 시스템 안정성을 확보하는 숨 고르기 과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머지않아 서울 하늘을 가로지르는 에어택시를 일상처럼 마주하게 될까요? 그 해답은 지금 우리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담대한 도전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