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어젯밤에도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잠드셨나요? 알람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의미 없이 소셜 미디어를 스크롤하다 스르르 잠든 경험, 아마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의 이 무심한 습관이 모여,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2025년 7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생활시간조사는 단순한 숫자들의 나열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하루를 낱낱이 해부해 시대의 변화를 가장 정밀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이 비춘 우리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입니다. 조사가 시작된 1999년 이래 25년 만에,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수면 시간이 처음으로 감소했습니다.
우리는 왜 잠을 줄이고 있을까요? 그 잠 못 드는 밤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을까요? 시간을 들여다보면, 시대가 보입니다. 지금부터 그 시간의 기록을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2024년,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58분으로, 마침내 8시간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이는 25년간 꾸준히 증가하던 수면 시간이 처음으로 뒷걸음질 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국민 10명 중 1명 이상(11.9%)은 어젯밤 '잠을 설쳤다'고 답했으며, 이들은 평균적으로 32분의 수면을 도둑맞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베개에서 훔쳐낸 이 소중한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요? 범인은 명확합니다. 바로 우리의 손에 들린 스크린입니다.
• 평균 수면 시간: (5년 전 대비) 2분 감소 ▶ 8시간 → 7시간 58분
• 미디어 이용 시간: (5년 전 대비) 28분 증가 ▶ 40분 → 1시간 8분
보시다시피 지난 5년간 미디어 이용 시간은 거의 두 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우리가 잠들기 직전까지, 그리고 잠에서 깨자마자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스마트폰이 되었음을 통계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습관 문제를 넘어섭니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연결 사회'가 우리의 휴식권을 어떻게 잠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사회적 현상입니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번아웃과 생산성 저하를 넘어, 우리의 정신과 신체를 서서히 병들게 하는 조용한 암살자일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일, 학습 등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시간(7시간 20분)은 줄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가 시간(5시간 8분)은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 늘어난 여가 시간의 속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쉬고 있을까요?
늘어난 5시간의 여가 시간은 친구와 만나 웃고 떠드는 ‘대면 교제’나, 땀 흘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스포츠 활동’으로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의 대부분은 소파에 누워 스크린을 넘기는 수동적인 미디어 이용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끝없는 자극과 도파민의 향연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재충전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뇌를 쉬게 하는 ‘멍때림’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디지털 세상과 단절될 때 찾아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늘어난 여가 시간은 오히려 ‘디지털 피로감’과 ‘정서적 고독’을 심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식탁은 시대의 풍경을 반영합니다. 이번 조사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전 연령대에서 보편화된 혼밥(혼자 식사) 문화입니다. 특히 아침 식사를 거르거나 혼자 먹는 20대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개인화된 시간표는 세대별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 10대: 학교 밖 학습 시간, 즉 사교육에 쓰는 시간은 여전히 줄지 않았습니다. 교실 밖에서도 끝나지 않는 학업 압박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 30~40대: 일과 가사노동의 이중고에 시달리며 하루 중 여가 시간이 가장 부족한 낀 세대입니다. 이들의 고군분투는 대한민국의 허리가 얼마나 팍팍한 삶을 견디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 60대 이상: 가장 많은 여가 시간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미디어 이용 시간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이 세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양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질적으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는 또 다른 질문입니다.
결국 '혼밥'의 증가와 세대별로 판이하게 다른 시간표는 1인 가구의 급증, 개인주의의 심화, 그리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세대 간의 생활 격차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2024년 생활시간조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잠을 줄이고 스크린을 보는 시간이 늘었으며, 함께하는 시간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익숙해진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통계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경고등입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장 귀한 자원인 ‘시간’의 주도권을 이대로 놓쳐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시간을 되찾기 위한 결단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한 시간 전에는 스마트폰을 멀리 두는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해봅시다. 5분이라도 좋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을 보거나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수동적인 미디어 소비 대신, 능동적으로 몸을 움직이거나 사람을 만나는 활동에 의식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정시 퇴근 문화를 정착시켜 일과 삶의 균형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적, 사회적 지원이 시급합니다. 모든 세대가 양질의 여가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공평한 자산이자, 삶 그 자체입니다. 스크린에 저당 잡힌 우리의 시간을 되찾고, 진정한 쉼과 연결을 회복하기 위한 고민을 오늘부터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