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사진 출처: equal-earth.com)
질문 하나로 시작하겠습니다. 아프리카와 그린란드, 둘 중 어느 대륙이 더 클까요?
우리가 교과서, 뉴스, 인터넷에서 늘 봐왔던 익숙한 세계 지도를 떠올려보면, 그린란드는 아프리카 대륙과 맞먹거나 오히려 더 커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거대한 착시 속에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진실은, 아프리카 대륙이 그린란드보다 면적 기준으로 무려 14배나 더 큽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은 단순한 지리 퀴즈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인 지도가 실제 세계의 모습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최근, 이 왜곡된 창을 바로잡으려는 국제적인 움직임, 이퀄 어스(Equal Earth) 캠페인이 아프리카 연합(AU)의 지지를 받으며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세계 지도는 대부분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으로 그려졌습니다. 1569년 플랑드르의 지리학자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가 고안한 이 지도는 본래 대항해시대의 항해사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지도상의 두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항해 경로의 각도가 정확하게 유지되어, 망망대해를 건너는 데 필수적인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에는 치명적인 대가가 따랐습니다. 둥근 지구를 평평한 직사각형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적도에서 멀어지는 고위도 지역(북극과 남극에 가까운 곳)으로 갈수록 면적이 실제보다 훨씬 거대하게 부풀려집니다.
이 왜곡이 어느 정도인지 아래 내용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죠.
• 실제 면적 (km²): 30,370,000
• 메르카토르 도법상 특징: 실제보다 훨씬 작아 보임 (중국, 미국, 인도를 합친 것보다 큼)
• 실제 면적 (km²): 2,166,000
• 메르카토르 도법상 특징: 실제보다 약 14배 부풀려져 아프리카와 비슷하게 보임
• 실제 면적 (km²): 10,180,000
• 메르카토르 도법상 특징: 실제보다 훨씬 크게 표현되어 세계의 중심처럼 보임
• 실제 면적 (km²): 17,840,000
• 메르카토르 도법상 특징: 유럽보다 거의 두 배 크지만, 지도상에서는 비슷하게 보임
이러한 왜곡을 직접 체감하고 싶다면, 웹사이트 'The True Size Of...'에 방문해 보세요. 우리나라를 아프리카나 그린란드 위에 옮겨보며 우리가 얼마나 크기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The True Size Of...> 웹사이트에서는 메르카토르 도법 지도 위에 실제 크기에 맞게 투영된 아프리카, 미국, 중국, 인도의 모습을 겹쳐 보여주며 아프리카 대륙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시각적으로 강조합니다.
지도는 단순히 땅의 모양을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지도는 권력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입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이 탄생하고 보급된 시기는 제국주의 시대와 맞물립니다. 그 결과, 이 지도는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북반구의 유럽과 북미는 실제보다 크고 웅장하게, 적도 부근의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 등 남반구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작고 왜소하게 그려졌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지도학적 식민주의(Cartographic Colonialism)라고 부릅니다. 눈에 보이는 지리 정보의 왜곡이 무의식적인 편견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리적 왜곡이 아프리카의 국제적 비중을 축소하고, 이 대륙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강화한다."
우리는 왜곡된 지도를 보며 자라면서 아프리카를 '작고, 가난하며, 무력한 대륙'으로 인식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의식적 편견은 국제 사회의 정책 결정, 미디어의 보도 방식, 심지어 개인의 세계관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메르카토르 도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갈-페터스 도법(Gall-Peters projection)은 각 대륙의 실제 면적을 정확하게 표현해 교육계에서 주목받았지만, 대륙의 형태가 남북으로 너무 길쭉하게 왜곡되어 미학적으로 어색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8년, 새로운 대안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이퀄 어스(Equal Earth) 지도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세 명의 지도학자가 "실제 면적을 정확히 반영하면서도, 미학적으로 보기 좋은 세계 지도를 만들자"는 목표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퀄 어스 지도는 실제 면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등적도법(equal-area)이면서도, 대륙의 모양 왜곡을 최소화하고 시각적으로 편안한 곡선형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하여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라는 점입니다.
최근 아프리카 연합(AU)을 중심으로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이퀄 어스' 지도 사용을 촉구하는 '지도를 수정하라(Correct the Map)'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이는 단순한 지도 교체를 넘어,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아프리카의 정당한 위상을 되찾으려는 주체적인 노력입니다.
지도는 세상을 비추는 창입니다. 만약 그 창이 왜곡되어 있다면,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습 역시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메르카토르 지도를 무조건 '틀렸다'고 비판하기보다, 그 용도(항해용)와 명백한 한계(면적 왜곡)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 보도, 정책 등 세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이해해야 하는 목적에는 이퀄 어스 지도와 같은 대안을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를 바꾸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무의식적인 지리적, 문화적 편견을 바로잡고, 더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오늘, 이퀄 어스 지도를 통해 진짜 세상의 모습을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